이름: 헨젤과그레텔
2003/11/2(일)
루소, 꾸밈없는 화가, 그리고 그의 해학...  

(*그림. 루소. 시골 결혼식)
*루소 Rousseau, Henri(1844~1910)
프랑스 화가. 마옌주 라발 출생. 일요화가 소박파(素朴派)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프랑스가 낳은 일요화가 소박(素朴)파의 대표적 인물인 앙리 루소라는
화가가 있습니다.
그는 원래 파리에서 세무서 관리 생활을 하다가 나이가 들어 퇴직하고서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가끔 우리 집 묻고 답하기에 그의 그림을 올리곤 하는데,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배시시 웃음이 절로 나올 때가 많곤 합니다.

``시골 결혼식" 이라는 그림을 보면 가운데 신랑신부가 예쁜 웨딩드레스 차림에
성장을 한 신랑이 서고, 그 앞으로 부모님일 듯싶은 두 노인과 친척과 친구일 것같은
이들이 배경을 이루며 서있습니다.
마치 여늬 나라의 결혼식마냥 누구든 흔히 봤음직한 모습입니다.
가만히 보면 그림속 이들이 입은 옷에 시선이 머물게 됩니다.
부모님일 것같은 이만 빼고 다들 검은 옷을 입고 있습니다.
서양에서 검은 옷은 상복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시골 마을에서 철 따라, 아니면 행사 때마다 옷을 장만한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일이였을 것입니다.
단 그 속에 입은 하얀색 와이셔츠가 상 중에 입은 옷이 아님을 나타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차마 부모님마저 그 경사스러운 날 검은 옷으로 입을 수야 없었을 테지요.
입은 옷으로나마 차별을 두어 굳이 부모님이라고 나타낼려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가 거기 까지만 그렸더라면 그러려니 했을 것입니다.
제일 압권은 그 그림 앞에 앉아 있는 배가 불러 몸이 무거운 것같이 느껴지는
검둥이 녀석인 멍멍이입니다. 그 녀석 또한 온통 검은 털로 뒤덮혀 있습니다.
아마도 시골개라는 걸 나타내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그림에서 그 녀석이 빠졌더라면, 아니, 그 녀석 대신 멋진 혈통을 지닌
사냥개를 그려 넣었더라면 아마도 그 그림을 시골 결혼식이라고 칭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질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녀석은 그냥 잡종 개 같습니다.
아마도 녀석은 피로연이 막 시작 되거나 아니면 파티가 끝난 뒤 뼈다귀 몇 조각에
꼬랑지를 흔들며 덩달아 뛰어다니다 각기 포즈를 취하자 잠시 앉아 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으로 ``포병들" 이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그 그림 역시 마치 사진을 찍어 논 것처럼 너무도 해학적이고 사실적으로 그려져서
웃음을 자아내게 되곤 하는데,
커다란 포를 중심으로 옆구리에 칼을 찬 지휘관과 그의 휘하에 있는 병사들이 자못
멋들어지게 포즈를 취하는 그림입니다.
가운데 있는 포가 잘 나오도록 포앞에 있는 병사들은 앉아 있고 더러는
포위에서  불안정스런 자세로 올라 타고 있는 그림입니다.
그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우리 남편이 군에 근무했을 때 병사들과 같이 찍은 사진을
보는 것 같기에 친근감이 들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리 꼭 같은 포즈를 취하고들 있는지
그 또한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세 번째는 ``주니에 아저씨 마차" 라는 그림입니다.
주니에 아저씨가 마차를 새로 구입 했을까요?
아니면 고객들을 실어 나르는 주니에 아저씨가 어느 날 잠시 짬을 내어
동네 어르신들을 모시고 잠시 동네 한 바퀴 돌다가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하듯 화가의
시야에 그대로 피사체로 담겨버린 건 아닌지?
그림속의 탑승객들은 고객이거나 관광객이라고 보기엔 무리일 것 같아
제가 볼 땐 아마도 동네분들이리라고 유추해 봅니다.
그 그림 속에도 여전히 쪼르르 달려나가는 개가 있고, 선 자세로 보아
고양이 일 듯싶은 동물이 등장합니다.
고삐를 쥔 주니에 아저씨의 당당한 풍체와 의기양양해 보이는 표정너머로
옆과 뒤에 탄 이들은 사뭇 송구스럽기 그지없는 표정이 재미있는 그림입니다.

이렇듯 해학과 익살이 넘치는 루소의 그림들이 당대에는 굉장히 촌스런 그림에
속했다 합니다.
나무에 비해 터무니없이 커다란 나뭇잎을 당당히 그리는가 하면  꽃 그림도
잎사귀 하나하나를 커다랗게 그리는 그만의 톡특한 화풍이 사람들에게는 무척
낮 설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의 그림이 독학의 화가들만이 출품할 수 있었던 전람회였던 앙데팡탕에
참가했고 1900년대 가서야 그의 특이한 화풍이 화가와 평론가 및 시인들의 주목을
끌게 되면서 그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답니다.
명암법이나 투시도 같은 교과서 같은 격식과는 거리가 먼 우리나라의 민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그의 그림이 나중에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나 화가인 피카소는 참다운
리얼리즘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답니다.
그의 그림중에는 더러 신비적인 그림도 있지만, 누가 뭐라든 난 그의 그림을 보면 그저
우리네 삶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사실들을 옮겨 논 것 같은 어줍잖은 해학과 익살이
낮설지 않기에 좋아하곤 합니다.
그닥 수준 높은 그림은 못 될지언정 그의 사물을 바라보는 따스하고도 정감어린 시선에
정이가기 때문입니다.

중세와 르네상스의 종교 지향주의적 작품 또한 훌륭하겠지만 바로크시대를 넘어
인간의 삶 속으로 뛰어든 루소 같은 화풍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더욱 친밀감과
감동을 자아내게 됩니다.
음악이든 그림이든 詩든 어찌 인간의 삶을 벗어난 작품이 우리들의 가슴을 적실 수
있겠습니까?
루소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예술은 가장 인간다울 때 더욱 빛을 발하고 우리의 삶을
적실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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