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헨젤과그레텔
2003/4/12(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밤 깊는 시골마을에 안개가 내렸습니다.
간간히 졸고 있는 가로등과
촉촉히 젖은 공기와 미동조차 하지 않는 사물이
어둠 속에 낮게 엎드려 있습니다.

브람스의 심포니 제1번 op.68이 흐릅니다.
이 곡은 베토벤이 10번 교향곡이라 불릴 만큼 베토벤 정신이 담긴
곡이지요.
마치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연상시키는 곡입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나더러 사람들이 종종 누구의 무슨 곡을 좋아하느냐고
묻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난 내가 누구의 곡을 좋아하는지, 왜? 그동안 뚜렷이
좋아하는 작곡가 하나 없이 듣기만 해 왔는지 나도 의아해 하곤 합니다.
왠지, 나는 음악 앞에서 만큼은 지조가 없어지곤 합니다.
모짜르트를 들으면 그 순간 만큼은 모짜르트가 제일 좋고,
베토벤을 듣는 순간은 베토벤이 가장 좋을 뿐입니다.
이 곡 저 곡 열심히 듣다가 귀가 현란해지는가 싶은 순간이면 난 저절로
Bach를 듣게 됩니다.
그러면 귀 속이 말갛게 정화가 되곤 합니다.

그제 밤에는 TV에서 주빈 메타가 이끄는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을 봤습니다.
제주에 살면서 가장 손해 볼 때가 바로 문화적인 면에서 제대로 누리지
못할 때가 가장 속상하곤 합니다.
몇 일 전에 남편보고 ``빈 필이 온데요,, 했더니 ``어떻게 혼자서 운영
하라고,, 하는 소리에 가고 싶은 마음을 참아야만 했습니다.
그런 명연주단체나 명연주가들이 올 때마다 나에겐 꼭 피치 못할 일이 생기곤
합니다.
빈 필의 연주와 남편의 코 고는 협연을 들으면서 더욱 원숙해진
장영주의 열정에 찬 바이올린 협연을 TV로만 봐야 했습니다.

내 삶에 있어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참으로 크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음악은 외로운 인생길을 같이 가 주는 동반자이자 절대 변하지 않는 친구입니다.
음악은 예술에 있어서 최고의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말 하고 싶습니다.
글도 우리를 속일 수 있고, 그림도 우리를 속일 수 있을지언정 음악만은 절대로
우리를 속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조그만 불협화음이라 할 지라도
우리는 인상을 찌푸리게 되곤 합니다.

나에게 있어서 음악이란 홀로 설 수 있게 하는 버팀목이곤 합니다.
인간이란 한 없이 나약한 존재이기에 사람이 허 할수록 대상에게 매달리게 되곤
합니다.
사람은 허 할수록 옆에 누군가 있어야 하고 그 대상을 통하여 내 존재를 발견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는 그게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를 느끼게 되곤 합니다.
인간이란 변하기 쉬운 존재이자 가장 부서지기 쉬운 존재입니다.
그런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절망을 느껴오던 나에게 음악은 나를 만나게 해준
매개체였습니다.
음악을 통하여 나는 나를 만나곤 합니다.
한번도 만난적 없던 나를,
미워 할 줄 알고,
사랑 할 줄 알고,
때로는 아름답다가도 때로는 질풍노도와 같은 분노에 휩쓸리기도 하는 나,
때로는 야비하고
때로는 천사같고, 그런 나를 바라보는 나는, 음악을 통하여 나로 하여금 조금씩
홀로 단단히 바르게 뿌리내려 가게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게 내가 음악을 듣는 이유입니다. 결국 인간은 홀로서야 하니까요.

어떻게 음악을 들어야 하는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말 하곤 합니다.
누구의 무슨 곡인가를 굳이 알려고 하지 말라고요.
비록 베토벤의 월광곡이라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내 자신이 베토벤의 월광을 들으면서 바다를 느낄 수 있다면 그 순간 그대는
바다인 것이면 될 뿐입니다.
비록 작곡가가 음악에 표제를 달았다 한들, 내가 느끼는 그 순간의 느낌이 중요하지
언어로 표현된 그 의미에 자신을 가두지 말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제목에 갇혀 듣는다면 그 음악은 매일 매일 새롭게 들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표제음악을 절대음악처럼 듣기도,
절대음악을 표제음악으로 듣기도 합니다.
같은 음악속에도 바다가 출렁이기도,
벌판이 펼쳐지거나
노을이 내리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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