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헨젤과그레텔
2003/3/1(토)
떠나는 것은 다 그리운 법  
쇼팽을 아주 좋아하시던 스님이 있었습니다.
내가 그 스님이 계신 절에 간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에
의해서였습니다.

그 날은 어린이 날이였습니다.
아는분으로부터 복잡하고 시끄러운 유원지로 애들을 데리고
가는 것 보다,
사찰로 가서 애들한테 스님의 들려주시는
법문도 듣게하고 한적한 법당마당에서 마음껏 뛰어 놀게
하는 게 더 유익하지 않겠냐는 제의에 흔쾌히 응해 간 것입니다.

산 속 꼬불꼬불 난 길을 향하여 한참을 들어가니,
법당이라기보다, 가정집 같은 조그만 스레트집 두채가
5월의 푸르른 잔디가 아늑하게 펼쳐진 예쁜 마당을
배경으로 서 있는 그런 곳이였습니다.

간단한 예불을 마치고 우리 일행은 차를 마시러 오라는 스님의
부름에 조그만 차실로 향했습니다.

문을 연 순간 흘러나오던 쇼팽의 즉흥환상곡,

난 스님이나, 목사님, 신부님같은 분들은 음악을 듣거나
세속적인 것에서는 이미 관심을 버리신 분들이라고, 나름대로
판단을 내리곤 하던 때였습니다.

바스락대던 재빛승복,
창 밖으로 펼쳐진 삼나무 숲,
지난해 피워내고 미처 사그라지지 못한 갈대의 울음,

스님은 참선자세로 지긋이 눈을 감고 참선을, 아니, 쇼팽을
감상하고 있었습니다.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고요로움과 재빛승복이 그 처럼 아름답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차를 마시고 난 후,
우리는 계곡으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계곡 이 곳 저 곳에는 춘란이 함초롬히 꽃을 피우고 있곤 하였는데,
스님은 낙엽을 이용하여사람들 눈에 띄면 캐어 간다면서그 꽃들을 살짝
덮어주곤 하였습니다.

녹음무성한 계곡으로의 산책을 끝내고 내려오는 벌판으로, 저 만큼
앞선 애들과 꼬랑지를 살래살래 흔들며 따라가던 강아지 두마리,
그리고,
스님이 부르시던 너무나도 맑은 바리톤 음성의 슈베르트의 보리수,
``성문 앞 우물가에 서 있는 보리수.....,,
승복자락 바람에 하늘하늘 나부끼는 산자락으론 노을이 깊게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 곳에는, 그 스님은 안 계십니다.
곧잘, 바랑에 미니스테레오와 클래식테잎, 다구와 차잎을 넣고
다니다가 누가 탐내면,
``아, 가져요.,, 하며 줘 버리던 스님,

어느 햇살 뜨겁던 여름 날,
여럿이서 들린 해수욕장에서, 갑자기 승복을 훌훌 벗는가
싶더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풍덩! 물에 뛰어 들더니
하루 해가 지도록 물 밖으로 나오질 않던 스님,
그런 스님께 `` 아니 세상에 어쩜 그럴 수 있으세요? 다 봐
버렸잖아요. 벗으신다고 언질을 주셔야지.,, 하는 나의 익살맞은
항의에,
``아니 그럼 처음으로 봤단 말입니까? 그게 어때서요.채윤이도
그 곳에서 나왔고, 나도 그 곳에서 나왔고,
부처님이고 예수님이고, 다 그 곳에서 나왔는 걸.,, 하시던 스님!
스님이 떠나신지 오랜세월이 흐른 후, 수소문 끝에
안부전화를 드려서,
``왜, 떠나셔야 했나요?,, 묻는 내 질문에
``예, 그 곳에선 음악을 들을 수가 없어서요.,,
이제 그 절은 큰 법당으로 변모했지요.

스님은 이미 떠나셨지만, 난 아직도 삶이 힘겨울 때 마다 그 절을
찾곤 합니다.
바람에 나부끼던 삼나무 숲도,
두 마리의 강아지도,
쇼팽의 즉흥환상곡도 이젠 들을 수가 없습니다.

떠나는 것은 다 그리운 것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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