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헨젤과그레텔
2003/9/22(월)
겨울도 머지않은 가을 날  



오랜만에 찬찬히 거울을 들여다 봤습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정신없이 살아오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어느덧
머리위에는 하얀 서리가 전보다 더 잔뜩 내렸습니다.
나에게는 영원히 오지 않으리라 여겼던 늙음이 그렇게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내 머리를 친구, 또는 주위사람들은 염색을 하라고 할  때마다
난 단호히 거절을 하곤 합니다.

그냥 난 나이가 들어간다는 게 좋습니다.
30대 후반인 어느 날,
거울을 보는 데 눈가에 주름이 잡히는 것이였습니다.
물론 머리에도 몇 가닥 하얀 새치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지요.
그 순간 난 그냥 흐뭇 했습니다.
나에게 있어 나이가 든다는 것은
외모의 외적 아름다움을 지향함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마음의 눈이 떠가는 것임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내적인 아름다움이 동반 되질 않고서야
아무리 외면이 아름답다 한 들 그것은 생명이 없는
인형과 다름없음을 알게 해준 세월.

누가 나더러 젊은 시절로 돌아가게 해준다고 제의를 해 온다면 난 단호히
싫다고 할 것입니다.
그 질풍노도 같은 혈기와 터무니없는 패기로 똘똘 뭉친 채, 모순을 향해
곧잘 치닫던 길들여지지 않은 망아지 같던 시절,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것들은 나에겐 결코, 돌아갈 만큼 매력을 주는
시절은 아니였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협소한 시각을 지닌 채 멋모르고 날뛰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삶을 재생하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난 지금의 내 모습에 만족하곤 합니다.
외모를 지향하며
인간을 통한 상대적 나르시시스트적인 만족감에서 벗어나,
바람을 느낄 줄 아는 나.
노을을 느낄 줄 아는 나.
흙을 사랑할 줄 아는 나.
상대의 장점을 좋아하기에 앞 서 단점도 이해할려고 할 줄 아는 나.
상대의 사랑을 요구하기에 앞 서 상대를 사랑 하고자 노력할 줄 아는 나.

하지만 종종 보다 영글고 지혜롭지 못한 행동을 하곤 하는 내 모습 앞에서
슬퍼질 때도 많습니다.
덜 수양된 모습과
나이가 들면 그만큼 자신 앞에 놓인 삶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하건만
종종 그러질 못하곤 하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아직도 멀었다고 스스로 자책하곤 합니다.
젊은 시절엔 실수를 해도 윗분들이 봐줄 수가 있지만 나이가 들어가니
후배이거나 젊은이들한테 어른다운 행동을 해야만 한다는 중압감과 책임감에
스스로 제약을 하며  보다 조심스럽게 처신을 하긴 하건만
아직도 완성된 인간이기엔 요원하기만 합니다.
이젠 누가 잡아주거나 봐주는 그런 나이가 아니라 스스로 책임을 지는
나이에 이른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나의 그런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왜냐면 나는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내 머리칼은 세어갈 것이고
내 얼굴에 난 주름은 깊게 골을 패여 갈 것입니다.
난 기꺼이 늙어가고 낙과가 될 지언정
나이가 들 수록 더 깊어지고 넓어진 내가 기다릴 것이라는 기대를 해보곤 합니다.
내 인생이 이제 가을을 가고 있으니
이제 곧,
겨울숲 깊어진 날이면.



   - 가장 고운 육신은
      베일일 뿐,
      그 속에 수줍에 하며
      보다 아름다운 것이 감춰져있다.-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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